[GIAF23] 231013 컬처램프 - 제 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 '서유록 西遊錄', 110년 전 강릉 김씨의 발길을 따라가듯
2023.9.26~10.29 강릉시립미술관 등 강릉 일대
강릉이야기 3부작 중 2부
제 2회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angneung International Art Festival: GIAF23) '서유록'이 9월 26일부터 10월 29일까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강릉시립미술관, 국립대관령치유의숲, 동부시장 레인보우(233호), 옥천동 웨어하우스 등에서 열리고 있다.
강릉의 역사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람과 예술을 이어주고자 시작된 GIAF는 재단법인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이사장 박필현)이 주최·주관한다. 지난 해 전시기획자, 현대미술작가, 산악인, 소셜셰프, 그래픽디자이너, 인권활동가 등 여러 전문가의 답사와 리서치를 통해 강릉을 보여주는 '강/릉/연/구 江陵連口'로 첫선을 보인 GIAF는 올해엔 ‘강릉 이야기(Tale of a City)’ 3부작 중 2부 '서유록 西遊錄'을 주제로 펼쳐진다.
'서유록'은 1913년 '강릉 김씨' 여성이 혼자서 대관령을 넘어 서울을 다녀온 37일간의 여정을 담은 기행문으로 1910년대 초의 서울풍경을 제대로 묘사한 기록이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여성문인의 여행기다.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했던 시절이었고, 일제가 한반도를 점령했던 격동의 시기에 한계를 극복하고 홀로 경성여행에 도전하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한 강릉 김씨가 올해 GIAF의 상징적 인물이자 주제 전달자로 등장한다.
박소희 예술감독은 "강릉 김씨의 여정과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예술을 매개로 강릉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유기적 관계를 조망하고자 강릉의 특징을 담은 공간들을 이동하며 즐기도록 구성했다"며 "이번 페스티벌이 강릉을 좀 더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행사도 강릉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도시 공간들에서 시각미술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기 때문에 여행하듯이 프로그램을 따라가다보면 강릉이라는 도시를 발견하는 즐거움과 현대미술이 주는 감동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홍순명, _서유록-홍씨 이야기_, 시립미술관 '서유록' 전시 전경 ( 사진 GIAF 제공)
2012년 개관한 강원도 유일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는 제 59회 베니스 비엔날레(2022) 벨기에관 대표작가였던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의 '모래 위 선' ( Sandlines, the Story of History, 싱글채널 비디오 , 61분, 2018~2020)을 국내 최초 상영한다. 이라크 모술 지역의 네르크줄리아를 배경으로 땅과 석유를 차지하려는 외부세력의 침략으로 인해 금이 그어지고 이웃과 적이 되는 상황을 어린이 배우들의 역할극을 통해 보여주며 평화와 독립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개막식이 열린 국립대관령치유의숲에서는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품이 소개됐다. 티노 세갈은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해석자'와 관람객이 실시간으로 만나는 과정과 행위를 통해 구축적 작업을 만들어 낸다. 소나무, 느티나무, 줄참나무 등이 우거진 치유의숲을 걷다 보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해석자'가 이야기나 노래를 들려주는 2016년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
홍순명, 서유록-홍씨 이야기-2305, 2023,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유채, 97x130cm
강릉시립미술관에서 홍순명작가는 '서유록' 여행기에 언급된 장소를 방문해 촬영한 이미지와 작가의 필치로 그린 회화를 한 화면에 겹쳐 표현한 풍경화와 강릉 김씨가 110년전 보았을 깊은 산 속의 풍경, 하늘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지역 작가 공모에서 선발된 송신규작가는 시간이 응축된 사물들을 종이 죽으로 본뜬 오브제를 마치 바닷가에서 생선을 건조시키듯 설치한 작품 '볼 수 없는 것'을 선보였다. 임호경 작가는 얼마전 강릉 경포대 일대를 태운 산불의 흔적에서 발견한 새로운 생명의 흔적을 설치 '탄소나무'와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송신규, 볼 수 없는 것, 2023, 구조물, 종이에 아크릴릭, 256 × 246 × 96 cm, 전시 전경. (사진 GIAF 제공)
강릉 동부시장은1977년 강릉시 옥천동과 교동에 개설됐으며, 서부시장과 더불어 강릉에서 가장 오래된 상설시장 중 하나다. 강릉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로 현재 재건축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GIAF23에서는 동부시장 안 유휴공간과 옛 매운탕집인 233호 '레인보우' 벽면을 전시장으로 활용해 고등어, 이우성, 양자주, 임호경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고등어 작가는 강릉의 여러 공간을 방문하고 그 공간에 관한 옛 이야기를 드로잉으로 그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오는 동안 촬영한 이미지와 오버랩된 영상 작업을 만들었다. 이우성은 바닷가 주변에서 본 사람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풍경의 일부처럼 투영한 작품을 레인보우 공간과 시장 2층 곳곳에 펼쳐 보이고 있다.
강릉 동부시장
이우성, 흐르고 흘러 강릉에서, 2023, 천 위에 아크릴릭 과슈, 각 110 × 110 cm, 전시 전경.
특정지역의 건축에 스며드는 독특한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연구해 시간의 흔적을 모아 재구성하는 양자주 작가는 강릉사투리를 쓰는 할아버지와의 대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그린 드로잉을 통해 강릉의 이야기에 다층적으로 접근한다.
옥천동 웨어하우스는 강릉의 구도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옥천동 동부시장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과거 양곡 창고로 사용된 이곳에서는 박선민 작가의 영상작품 '귀와 눈:노암'이 전시되고 있다. 100년의 세월을 지닌 노암터널을 지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촬영한 시간의 결과물이다.
박선민, 귀와 눈:노암, 2023, 3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4분, 전시 전경 (사진 GIAF 제공)
박선민작가는 사물의 크기나 형태와 같은 외적인 현상에 집중하는 동시에 이를 작가의 내면적인 성질과 연결짓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작가는 노암터널에 관심을 집중했다. 지난 해 제 1회 GIAF '강릉연구'의 장소가 되기도 했던 노암터널은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6.25 전쟁 때에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다. 1960년대부터 기찻길로 사용되다 서울-강릉 간 KTX 사업이 이루어지며 지금은 노암동 주민들의 쉼을 위한 공원이자 산책로로 재탄생했다.
박선민 작가는 노암터널을 카메라 렌즈로 오랜 시간 관찰했다. 산을 뚫어 만든 터널의 구조적 특징과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는 "노암터널의 산이 거인의 머리라고 할 때 터널의 양쪽 입구는 두 눈과 두 귀처럼 거인의 감각기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고 말했다. 유구한 역사를 거친 터널은 이제 평화로운 삶의 풍경이 되어 노암동 주민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 또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터널을 오가며 만들어 내는 발걸음 소리, 목소리, 자전거 바퀴소리 등 꾸미지 않은 자연 음향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은 부르클린 출신 음악가 데입드 그럽스의 '부서진 우산들의 동네'(2018)이다.
GIAF2023 '서유록' 중 박선민의 작품 '귀와 눈, 노암'이 설치된 강릉 옥천동 웨어하우스
파마리서치문화재단 박필현이사장은 "국내외 현대 미술작가들의 참여와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로 만들어지는 GIAF가 현대미술을 매개로 지역성과 국제성을 적절히 살린 행사로 자리 잡아가도록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강릉역에서 출발해 강릉시립미술관-동부시장-옥천동 웨어하우스-월화거리-노암터널-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이어지는 예술바우길을 따라 걷고, 국립대관령치유의숲에서 힐링하다보면 강릉의 매력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좋겠다. 각 사이트의 운영시간은 강릉시립미술관 10시~18시, 국립대관련치유의숲 10시~16시, 옥천동 웨어하우스 및 동부시장10시~18시,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금~일 오후 4시 영화 상영 .
함혜리 대표기자 (culturelamp@naver.com)